1960∼1970년대 영화배우와 감독으로 활동했던 남석훈이 최근 세상을 떠났다. 85세.
13일 영화계에 따르면 남석훈은 지난 7일 미국 하와이에서 숨을 거뒀다.
배우 한지일도 전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남석훈 선배님이 지난 7일 하와이에서 소천했다”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전했다.
평양 출신인 고인은 어린 시절 서울로 이사해 자랐고, 고교 졸업 이후 가수로 출발했다. 미 8군 무대에도 올랐던 그는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홍콩에 진출한 첫 한국 배우이기도 하다.
1962년엔 임권택 감독의 ‘두만강아 잘 있거라’에 출연하며 배우로 데뷔했다.
이어 유현목 감독의 ‘푸른 꿈은 빛나리’(1963)를 비롯한 청춘 영화에 주로 출연하다가 1970년대 들어선 정창화 감독의 ‘철인’(1972), 변장호 감독의 ‘흑나비’(1974), 한국과 홍콩 합작의 '흑표객'(1974) 등 무협영화에서 액션 연기를 펼치며 인기를 끌었다.
감독으로 내놓은 첫 번째 연출작은 액션 영화 ‘악명’(1974)이다. 고인이 주연도 맡은 이 영화는 폭력 조직의 비정한 세계에서 벗어나려고 하다가 비극적 최후를 맞는 남자의 이야기다.
이어 한국과 홍콩의 합작 무협영화 ‘비밀객’(1975), ‘정무문(속)’(1977), ‘소림통천문’(1977)과 가수 김수희가 주연을 맡은 멜로 ‘너무합니다’(1983) 등을 연출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가수 현미는 2018년 방송된 KBS 1TV ‘2018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남석훈을 60년 만에 재회해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당시 남석훈은 “(부인 오미나는) 함께 살다가 20년 전에 먼저 갔다”며 “17년 전 선교사와 재혼했다. 나도 지금은 목사가 됐다”고 털어놨다. 현미는 “고향도 같은 평양이고 친동생 같았다”고 애틋한 인연을 언급했다. 오미나씨와 사이에는 딸 남희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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